'이승기' 18년만에 돈 받는다. 정산금 소송 승소
가수 겸 배우 이승기가 전 소속사 후크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제기한 정산금 소송에서 승소하며,
연예계의 오랜 병폐로 지적되어온 ‘불투명한 정산 시스템’에 일침을 가했다.
재판부는 후크엔터테인먼트가 10년 이상 정산 자료를 제공하지 않은 행위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라고 명시하며,
이는 소속 아티스트와의 신뢰를 파탄낸 중대한 계약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민사소송을 넘어, 연예산업 전반에 걸친 공정성 확보와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판결문의 핵심 요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신뢰 파괴"
2025년 4월 4일 선고된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원고(후크엔터테인먼트)가 정산금을 지급하지 않고 정산자료를 제공하지 않은 행위는 고의 내지 적어도 중대한 과실로, 피고(이승기)에 대한 음반 및 음원 수익 정산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양측 간의 고도의 신뢰관계를 파괴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 같은 표현은 단순한 과실을 넘어서 의도적이거나 심각한 부주의가 있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후크 측은 정산 자료를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있었고, 이승기는 이러한 자료에 접근할 수 없는 구조였다. 법원은 “이러한 상황에서 피고가 정산금 채권이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소속 아티스트가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는 점을 명확히 짚었다.
이승기의 18년…정산 ‘0원’의 충격적인 실태
이번 사건의 시작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승기는 데뷔 이래 줄곧 소속되어 있던 후크엔터테인먼트로부터 18년 동안 음원 수익에 대한 정산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내용 증명을 발송했다. 이후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사태는 법정으로 비화됐다.
후크 측은 뒤늦게 자체 계산한 정산금 약 54억 원을 지급했지만, 그 직후 오히려 “광고 수익을 너무 많이 줬다”며 약 9억 원을 돌려달라는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맞서 이승기는 미지급된 정산금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고, 1심 재판부는 이승기의 주장을 받아들여 “후크엔터는 이승기에게 5억 8,100만 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 제도까지 바꾼 ‘이승기 사태’, 대중문화 발전법 개정 이끌어내다
이승기의 문제 제기는 단지 개인의 정산금 반환을 넘어서, 연예계 시스템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그는 소송 진행 중 “저처럼 어린 나이에 활동을 시작한 후배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해달라”며 호소했고, 그 결과 정부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시행령을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개정안의 핵심은 연예기획사가 소속 아티스트에게 연 1회 이상 정산 내역과 그 근거가 되는 회계 내역을 '서면 또는 전자문서'로 의무 제공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이른바 ‘이승기 방지법’이라 불리는 이 법은, 앞으로 유사한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막는 제도적 장치가 되었다.
왜 이 판결이 중요한가: 연예계 구조에 경종 울린 ‘첫 사례’
이번 판결이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이 사건이 가지는 파장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연예계에서 흔히 ‘묻지마 계약’이라 불리는 장기 계약, 불투명한 회계, 전속계약 위반 등은 그간 수없이 문제 제기되었으나, 제대로 된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사례는 드물었다.
그러나 이승기의 경우는 달랐다. 대중의 인식과 언론의 집중 조명, 그리고 본인의 강력한 의지와 법률 대응으로 인해 사법부는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조한 본보기를 만들게 되었다. 특히 **"정산자료를 제공하지 않은 행위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라는 명시는 향후 유사한 계약 분쟁에서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소속사 독점 구조의 문제점 드러나…“알 수도, 요구할 수도 없던 시스템”
판결문에는 특히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 있다. 바로 “원고가 피고의 음반 및 음원 수익 관련 자료를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피고는 정산금 채권이 발생했음을 쉽게 알 수 없었을 것”이라는 문구다.
이는 단지 ‘정산을 안 해줬다’는 차원을 넘어, 정산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는 구조적인 불평등이 존재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처럼 ‘불균형한 정보 접근’은 단순한 무지나 방치가 아니라, 계약상 약자의 권리를 조직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일 수 있다는 점을 이번 판결은 보여준다.
이후 영향은? 연예계 판례로 자리잡을 가능성
이 사건은 향후 연예계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신인이나 무명 아티스트들이 소속사와의 계약에서 보다 명확한 정산 조항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사회적 명분을 얻었으며, 기획사들도 법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내부 정산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성이 커졌다.
또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시행령 개정 이후, 관련 위반 사례가 발생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나 노동청 등 기관의 조사 가능성도 높아졌다. 즉, 이번 사건은 단순한 연예인의 개인적인 권리 투쟁을 넘어, 한국 연예계 계약 문화의 새로운 전환점을 알리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맺으며: “신뢰는 계약의 기본…법은 이를 보호해야 한다”
이승기 사건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계약’이라는 것의 본질을 되새기게 된다. 단순히 종이에 적힌 조항을 넘어,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신뢰’이며, 이 신뢰가 무너졌을 때 법은 그 피해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 판결은 그 당연한 원칙을 현실에 적용한 사례로, 연예산업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시사점을 남긴다.
기사 출처:
박서연 기자, 「이승기, 정산금 소송 승소 판결문 일부 공개…“10년간 고의로 정산 안 해 신뢰 파괴”」,
마이데일리, 2025.04.08.